기원전 5세기
냄새가 병을 옮긴다는 생각
히포크라테스가 미아즈마(μίασμα, ‘오염’)라는 개념을 세웠다. 썩은 것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가 병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이 생각이 2천 년 넘게 의학의 주류였다. 말라리아(malaria)라는 병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다.
1738 – 1767 · 파리 · 그라스
첫 장부터 냄새의 목록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 냄새들이 무엇인지, 왜 그 시대 사람들이 냄새에 그토록 예민했는지, 꽃에서 향을 어떻게 꺼내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이 페이지는 그 설명만 모았다. 줄거리·결말·인물의 운명은 한 줄도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데 걸리는 것은 어려운 문장이 아니라 낯선 세계다.
18세기 파리가 어떤 냄새였는지,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냄새를 무엇으로 여겼는지. 이걸 모르면 첫 장의 냄새 목록이 그저 지저분한 묘사로 읽힌다. 01·02장.
증류·냉침법·온침법이 각각 무엇이고 왜 꽃마다 다른 방법을 쓰는지. 소설은 이 기법들을 설명 없이 지나간다. 03~05장.
용연향·사향·시벳·네롤리·베르가못. 무엇에서 나온 물건인지만 알아도 장면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06장이 사전이다.
01·02장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 소설의 첫 장이 딛고 선 자리가 거기다. 나머지는 책을 읽다 걸릴 때 찾아보면 된다.
검색창에 원료 이름이나 기법을 넣으면 장 구분을 넘어 페이지 전체에서 그 대목만 뽑아 준다. “용연향”, “냉침법”, “베이스 노트” 같은 말이 걸렸을 때 쓰면 된다.
스포일러는 없다. 부제에 이미 있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까지는 전제로 두었지만, 그 이상은 없다. 특히 조향 기법을 설명하면서 그 기법이 소설에서 무엇에 쓰이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 이 책에서는 그것이 곧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영화(2006)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첫 장은 냄새의 목록으로 시작한다. 그 목록이 과장이 아니다.
18세기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축에 들었고, 하수도가 없었다. 오물은 길에 버려졌고 비가 오면 씻겨 내려갔다가 마르면 다시 먼지가 됐다. 무두질·도축·염색 같은 냄새나는 일이 도시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런 작업장은 대개 강가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 이노상 묘지가 있었다.
파리 중앙시장 레알 바로 옆이다. 12세기부터 22개 교구의 시신을 받아 왔고, 누적 200만 구가 넘는다. 구덩이 하나에 1,500구씩 묻고 흙을 덮었다. 자리가 모자라자 담을 따라 납골당을 지어 파낸 뼈를 쌓았다.
1780년 봄비 뒤에 담이 무너져 이웃집 지하실로 시신이 쏟아졌다. 그해 9월 4일 매장 금지 칙령이 내려졌고, 1786년부터 뼈를 지하 채석장 — 지금의 카타콤 — 으로 옮겼다. 옮기는 과정에서 덜 썩은 시신 다수가 시랍(屍蠟)이 되어 있는 것이 발견됐다. 지방이 비누 같은 물질로 변한 것이다. 그것을 걷어내어 양초와 비누로 만들어 팔았다.
즉 이 소설이 그리는 파리의 냄새는 소설적 과장이 아니라 기록이다.








이 장을 읽고 나면 이 소설에서 향료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지 달라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병이 미생물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은 1870~80년대다. 그 전까지 2천 년 넘게 유럽 의학의 주류는 미아즈마설이었다.
미아즈마(μίασμα)는 그리스어로 오염이다. 썩은 것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가 병을 일으킨다는 설명이고, 히포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말라리아(malaria)라는 병 이름이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인 것이 그 흔적이다.
이 믿음에서 아주 논리적인 결론이 나온다. 나쁜 냄새가 병이라면, 좋은 냄새는 약이다.
흑사병 시기 의사들이 쓴 새 부리 가면은 분장이 아니다. 부리 안에 향료를 채웠다 — 말린 꽃, 허브, 유향, 식초에 적신 스펀지. 나쁜 공기를 좋은 냄새로 막는다는 논리였다.
향료를 담아 목이나 허리에 차던 구멍 뚫린 금속 구슬. 어원은 pomme d'ambre, ‘용연향 사과’다. 오렌지에 정향을 빽빽이 박아 만든 것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물로 씻는 것이 오히려 모공을 열어 나쁜 공기를 들인다고 여기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몸을 닦는 대신 향을 덧입혔다. 향수가 사치가 아니라 위생 용품이었던 셈이다.
이 소설의 세계에서 향료는 사치품인 동시에 방역 물자이고 신분의 표시다. 향을 다루는 사람은 오늘날의 화장품 제조업자가 아니라 약재상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 조향이 길드로 통제되고 처방이 비밀에 부쳐진 이유도 여기 있다.
그리고 냄새가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며 사람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소설의 전제 전체가 그 믿음 위에 서 있다.


존 스노가 런던 콜레라의 원인이 공기가 아니라 물임을 보인 것이 1854년, 로베르트 코흐가 탄저병의 원인균을 밝힌 것이 1876년이다. 1880년대에 세균설이 미아즈마설을 완전히 대체한다. 즉 소설의 인물들은 냄새가 곧 병이라고 진심으로 믿은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향수의 수도가 어떻게 향수의 수도가 되었나. 시작은 냄새를 가리려던 것이었다.
그라스는 프로방스의 언덕 마을이다. 해발 350m, 지중해에서 20km. 바닷바람이 직접 닿지 않고 따뜻해서 꽃을 기르기 좋다.
그런데 이 마을은 원래 무두질의 도시였다. 가죽 무두질은 오줌과 짐승 배설물과 나무껍질을 쓰기 때문에 냄새가 지독하다. 무두장이들은 그 냄새를 감추려고 완성한 가죽 장갑에 향을 입혔다.
16세기 중반, 무두장이 장 드 갈리마르가 그 향수 장갑을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바쳤다. 왕비가 반했고, 궁정과 상류사회로 퍼졌으며, 그라스의 이름이 유럽에 알려졌다. 1614년 국왕이 ‘장갑을 만들고 향을 입히는 사람들’의 동업조합을 정식으로 인정한다.
17세기가 이 직업의 전성기였고, 그 뒤 세금과 니스와의 경쟁으로 가죽 쪽이 밀려났다. 남은 것이 향료였다. 지금도 그라스는 프랑스 천연 향료의 3분의 2를 만들고, 자스민만 해마다 27톤을 딴다.








소설은 이 기법들의 이름만 부르고 지나간다. 무엇이 다른지만 여기 적었다.
먼저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다. 꽃에는 향이 있는데, 그 향은 아주 적은 양의 기름 형태로 들어 있다. 그것을 꺼내되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방법이 여러 개인 이유는 하나다 — 재료마다 견디는 것이 다르다. 어떤 향은 열에 죽고, 어떤 향은 물에 녹고, 어떤 꽃은 딴 뒤에도 계속 향을 만든다.
껍질을 짜서 기름을 받아낸다.
감귤류 껍질을 눌러 짜면 향유가 그대로 나온다. 열도 용매도 필요 없다.
무엇에 레몬·오렌지·베르가못 같은 감귤류 껍질.
왜 그 방법인가 감귤 껍질의 향유는 겉껍질 바로 아래 주머니에 들어 있어 짜기만 해도 나온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수증기에 향을 실어 보낸 뒤 식혀서 받는다.
구리 증류기(알렘빅)에 재료와 물을 넣고 끓인다. 수증기가 향 성분을 데리고 올라가고, 그것을 관으로 빼내 차게 식히면 다시 액체가 된다. 기름은 물 위에 뜨므로 걷어낸다.
무엇에 라벤더·로즈마리·백리향 같은 열에 견디는 재료. 장미도 증류로 한다.
왜 그 방법인가 물을 끓이는 것이지 재료를 태우는 것이 아니다 — 그래서 재료 자체의 끓는점보다 낮은 온도에서 향을 뽑을 수 있다. 남은 물이 플로럴 워터(하이드로솔)다.
굳은 기름에 꽃을 얹어 향이 스며들게 한다.
유리판을 끼운 나무틀(샤시)에 무취의 동물성 지방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꽃을 뿌린다. 하루에서 사흘마다 시든 꽃을 걷어내고 새 꽃을 얹는다. 지방이 향으로 포화될 때까지 반복한다. 향을 머금은 지방을 포마드라 하고, 여기에 알코올을 부어 향만 뽑아낸 것이 앱솔뤼트다.
무엇에 자스민·튜베로즈처럼 열에 향이 죽는 꽃. 그리고 딴 뒤에도 계속 향을 내는 꽃.
왜 그 방법인가 이 꽃들은 증류하면 향이 변질되거나 사라진다. 열을 전혀 쓰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 다른 수가 없었다. 대신 사람 손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따뜻하게 녹인 기름에 꽃을 담근다.
지방을 데워 녹인 뒤 재료를 넣고 저어 준다. 시든 것을 걸러내고 새것을 넣기를 반복한다.
무엇에 냉침법보다 덜 예민한 재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왜 그 방법인가 냉침법보다 빠르지만 열이 들어가므로 가장 섬세한 꽃에는 못 쓴다.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는데, 차갑게 하느냐 따뜻하게 하느냐가 갈림길이다.
화학 용매로 향을 녹여 낸 뒤 용매를 날린다.
휘발성 용매에 재료를 담가 향 성분을 녹여 낸 뒤 용매를 증발시킨다. 남은 것이 콘크리트이고, 여기서 알코올로 향만 뽑으면 앱솔뤼트다.
무엇에 오늘날 자스민·튜베로즈에 쓰는 방법.
왜 그 방법인가 냉침법이 하던 일을 훨씬 싸게 한다. 19세기 이후에 나온 방법이라 이 소설의 시대(18세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냉침법은 사람 손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꽃을 새벽마다 따서, 며칠마다 수십 장의 틀에서 갈아 끼우기를 몇 주씩 반복해야 한다. 19세기에 용매 추출이 나오면서 훨씬 싸게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됐고, 냉침법은 상업적으로 사라졌다.
즉 이 소설이 그리는 조향은 사라지기 직전의 기술이다. 소설의 시대(18세기)에는 용매 추출이 존재하지 않았다.
향수는 한 번에 다 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층이 벗겨진다.
원리는 단순하다. 가벼운 분자가 먼저 날아가고 무거운 분자가 나중에 남는다. 그래서 뿌린 직후와 세 시간 뒤에 나는 냄새가 다르다. 이것을 세 층으로 나눠 부르는 것이 향수 피라미드다.
다만 이 용어 자체는 19세기에 생겼다. 소설의 시대에는 아직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 — 그러나 현상은 그때도 똑같았고, 조향사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층 | 언제 | 얼마나 | 무엇이 들어가나 | 하는 일 |
|---|---|---|---|---|
| 탑 노트 머리 | 뿌리자마자 | 몇 분 | 감귤류, 허브, 가벼운 향신료 — 작고 가벼운 분자라 빨리 날아간다 | 첫인상을 만든다. 매장에서 시향지를 코에 대는 순간 맡는 것이 이것뿐이다. |
| 미들 노트 심장 | 탑이 사라지면서 | 20분 ~ 1시간 | 장미·자스민·라벤더 같은 꽃, 부드러운 향신료 | 향수의 본체다. 그 향수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층이고, 이름도 대개 여기서 온다. |
| 베이스 노트 바탕 | 30분쯤 뒤부터 | 때로 24시간 이상 | 수지(유향·몰약), 나무(백단), 동물성 재료(용연향·사향), 바닐라 — 크고 무거운 분자 | 깊이를 만들고, 가벼운 층을 붙잡아 둔다(고착제). 이것이 없으면 향수가 한 시간 만에 사라진다. |
가벼운 향은 그냥 두면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무겁고 느리게 증발하는 재료를 섞어 붙잡아 둔다. 이것을 고착제(fixative)라 한다. 용연향·사향·수지·백단이 그 일을 한다.
동물성 재료가 향수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자체로는 대개 역겨운 냄새인데, 아주 옅게 타면 꽃만으로는 나지 않는 체온 같은 것이 생기고 향이 오래간다.
| 이름 | 향료 농도 | 지속 | |
|---|---|---|---|
| 퍼퓸 · 엑스트레 | 20~30% | 6~8시간 | 가장 진하고 가장 비싸다. 소량을 점으로 찍어 쓴다. |
| 오 드 퍼퓸 (EDP) | 15~20% | 4~6시간 | 오늘날 가장 흔한 형태. |
| 오 드 투알레트 (EDT) | 5~15% | 2~4시간 | 가볍게 뿌리는 일상용. |
| 오 드 콜로뉴 (EDC) | 2~5% | 1~2시간 | 18세기 초 쾰른에서 나온 이름이다. 감귤 중심의 가벼운 향. |
| 오 프레슈 | 1~3% | 1시간 안팎 | 가장 옅다. |




소설이 이름만 부르고 지나가는 것들. 무엇에서 나온 물건이고 어떤 냄새인지만 적었다.
어디서 그라스에서 재배하는 흰 꽃. 해 뜨기 전에 딴다 — 낮이 되면 향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냄새 짙고 달고 어딘가 동물적이다. 순수한 자스민 앱솔뤼트는 그 자체로는 불쾌할 만큼 진하다. 열에 죽어서 증류가 안 되고, 그래서 냉침법이 필요했다.

어디서 그라스의 5월 장미. 꽃잎이 백 장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어떤 냄새 꿀 같고 부드럽다. 향유 1kg 을 얻는 데 꽃잎 수백 킬로그램이 든다. 장미는 열에 견디는 편이라 증류로 뽑는다.

어디서 멕시코 원산의 흰 꽃. 그라스에서 재배했다.
어떤 냄새 무겁고 크림 같고 관능적이다. 자스민처럼 딴 뒤에도 계속 향을 낸다 — 그래서 냉침법의 대표 재료다.

어디서 쓴오렌지 나무의 흰 꽃. 같은 나무에서 부위마다 다른 향료가 나온다 — 꽃에서 네롤리, 잎과 잔가지에서 프티그랭, 열매 껍질에서 비터오렌지 오일.
어떤 냄새 맑고 쌉쌀하고 약간 금속성이다. 오 드 콜로뉴의 뼈대가 이 향이다.
어디서 프로방스의 마른 언덕에서 자란다.
어떤 냄새 깨끗하고 서늘하다. 열에 강해 증류로 쉽게 뽑히고, 그래서 값이 싸다. 비누와 세제의 향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어디서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 나는 감귤. 먹지 못한다 — 껍질만 쓴다.
어떤 냄새 레몬보다 부드럽고 꽃 같은 쓴맛이 있다. 껍질을 짜서 뽑는다. 얼그레이 홍차의 그 향이다.

어디서 인도 남부의 나무. 향은 잎이나 꽃이 아니라 심재(줄기 속의 단단한 부분)에 있다. 쓸 만해지려면 30년 이상 자라야 한다.
어떤 냄새 우유 같고 따뜻하고 오래간다. 베이스 노트의 대표다.

어디서 아라비아·소말리아의 유향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흘러나오는 수지가 굳은 것.
어떤 냄새 차갑고 맑고 종교적이다. 태우면 연기가 난다 — 향(incense)이라는 말 자체가 여기서 왔다.

어디서 같은 방식으로 얻는 다른 나무의 수지.
어떤 냄새 쓰고 흙 같고 약 냄새가 난다. 고대에 시신을 방부하는 데 썼다.

어디서 난초과 덩굴의 꼬투리. 딴 직후에는 향이 없고, 몇 달에 걸친 발효·건조를 거쳐야 향이 생긴다.
어떤 냄새 달고 둥글다. 향수에서는 단맛이 아니라 무게를 담당한다.

어디서 향유고래의 소화관에서 만들어지는 덩어리. 고래의 1% 정도만 만든다. 바다에 떠다니거나 해변에 밀려온 것을 줍는다. 15g 짜리부터 50kg 짜리까지 있다.
어떤 냄새 갓 나온 것은 희고 분변 냄새가 난다. 바닷물과 햇빛 속에서 몇 년이 지나면 회흑색으로 굳으며 달고 흙 같고 바다 같은 향이 된다. 최고의 고착제였다. 2021년 예멘 앞바다에서 나온 127kg 덩어리가 150만 달러로 평가됐다.

어디서 사향노루 수컷의 배에 있는 분비샘. 얻으려면 짐승을 죽여야 했다.
어떤 냄새 따뜻하고 살갗 같다. 희석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지금은 전부 합성으로 만든다 — 1888년에 인공 사향이 나온 뒤로 그렇게 됐다.

어디서 사향고양이의 항문 근처 주머니에서 긁어내는 기름진 물질.
어떤 냄새 그 자체로는 역겹다. 그런데 아주 옅게 타면 향수에 살아 있는 느낌과 온기를 준다. 동물성 재료가 향수에서 하는 일이 대개 이것이다 — 꽃만으로는 나지 않는 체온을 만든다.


이 구조를 모르면 인물들이 왜 그 자리에 묶여 있는지가 안 읽힌다.
18세기 유럽의 수공업은 동업조합이 통제했다. 그 도시에서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값을 얼마로 받을지, 도제를 몇 명이나 둘지를 조합이 정했다. 조합에 속하지 않으면 그 일로 먹고살 수 없었다.
그 안에 세 계단이 있다.
apprenti. 장인의 집에 들어가 숙식하며 배운다. 임금이 거의 없고, 신분상 주인에게 매여 있다. 배우는 것 자체가 대가라는 논리다. 이 시기가 몇 년씩 이어진다.
compagnon. 수련은 끝났지만 제 가게를 못 연다. 일당(journée)을 받고 남의 가게에서 일한다 — 영어 journeyman 의 어원이다. 독일권에서는 여러 도시를 떠도는 편력이 관례였다.
maître. 조합에 등록해 제 가게를 열 수 있는 사람. 심사작을 내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자리 수가 정해져 있어서, 실력이 있어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평생 직인으로 남았다.
기술은 있는데 자리가 없는 사람이 늘 생긴다. 그리고 자리를 가진 장인은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뛰어난 재능이 나타나도 그것이 곧바로 지위가 되지는 않는다 — 지위는 실력이 아니라 등록으로 정해진다.
프랑스의 동업조합은 1791년 혁명기에 폐지된다. 소설이 끝나고 24년 뒤다.

이 소설이 왜 하필 18세기를 골랐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이 놓인 1738년에서 1767년은 루이 15세의 프랑스이고, 계몽주의의 한복판이다. 볼테르가 활동했고,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백과전서』를 만들고 있었다(1751년부터, 28권).
『백과전서』의 기획은 이런 것이었다 —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항목으로 정리해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한다.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믿음이고, 실제로 각 직업의 공정을 그림으로 그려 넣었다. 조향과 무두질의 작업도 그 도판에 있다.
그런데 같은 세기의 파리에는 하수도가 없었고, 사람들은 나쁜 공기가 병을 옮긴다고 믿었으며, 도시 한복판 묘지에서 시신이 넘쳐 나왔다. 가장 이성적이었던 세기가 가장 냄새나는 세기이기도 했다.
이 소설이 냄새를 한복판에 놓은 것은 그 대비 위에서 읽을 수 있다. 냄새는 이름 붙이기 가장 어려운 감각이다. 색에는 이름이 있고 소리에는 악보가 있지만, 냄새를 적는 표기법은 없다. 시각과 언어로 세계를 정리하려던 세기에, 정리되지 않는 감각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이다.



파리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간다. 지명만 적고 거기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적지 않았다.
소설의 무대는 파리, 몽펠리에, 그라스, 그리고 플롱뒤캉탈이다. 파리에서 그라스까지는 900km가 넘고, 18세기의 걸음으로는 몇 달이 걸리는 거리다.

18세기 유럽 최대급 도시. 하수 없는 거리, 중앙시장 레알, 그 옆의 이노상 묘지. 01장에서 다뤘다.
프랑스 중부 마시프상트랄의 봉우리, 해발 1,855m.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파리와 남프랑스 사이의 고원 지대에 있다.
지중해 가까운 도시. 중세부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의과대학 중 하나가 있어 의학과 약재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프로방스의 언덕 마을. 03장에서 다뤘다.


냄새를 둘러싼 2천 년. 소설이 놓인 자리가 어디인지 보인다.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가 미아즈마(μίασμα, ‘오염’)라는 개념을 세웠다. 썩은 것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가 병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이 생각이 2천 년 넘게 의학의 주류였다. 말라리아(malaria)라는 병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다.
14세기
흑사병 시기에 의사들이 쓴 새 부리 모양 가면은 장식이 아니었다. 부리 안에 향료를 채웠다 — 말린 꽃, 허브, 유향, 식초에 적신 스펀지. 나쁜 공기가 병을 옮긴다고 믿었으니 좋은 냄새로 막는 것이 논리적인 방어였다. 같은 이유로 귀족들은 향료를 담은 금속 구슬 포맨더를 목에 걸고 다녔다.

16세기 중반
프로방스의 그라스는 원래 무두질의 도시였다. 가죽 무두질은 오줌과 짐승 배설물을 쓰기 때문에 냄새가 지독하다. 그래서 만든 가죽 장갑에 향을 입혔다. 무두장이 장 드 갈리마르가 그 향수 장갑을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바쳤고 왕실이 반했다. 그때부터 그라스의 이름이 유럽에 퍼진다.

1614
국왕이 ‘장갑을 만들고 향을 입히는 사람들’의 동업조합을 정식으로 인정했다. 17세기가 이 직업의 전성기다. 그 뒤 세금과 니스와의 경쟁으로 가죽이 밀려나고, 향료만 남는다. 그라스가 향수의 도시가 된 것은 그렇게 가죽 냄새를 가리려다 생긴 일이다.

18세기 초
독일 쾰른(Köln, 프랑스어로 Cologne)에서 이탈리아 출신 조향사가 감귤 중심의 가벼운 향수를 만들었다. ‘쾰른의 물’이라는 뜻의 이 이름이 그대로 향수 농도의 한 등급 이름이 되었다.

1738 – 1767
루이 15세의 프랑스다. 볼테르와 디드로가 살아 있고, 『백과전서』가 편찬되던 이성의 세기다. 그런데 같은 도시의 거리에는 하수가 없었고, 오물은 창밖으로 버렸으며, 묘지는 넘쳐 있었다. 가장 이성적이었던 세기가 가장 냄새나는 세기이기도 했다.

1780.09.04
파리 한복판 레알 옆의 이노상 묘지는 12세기부터 22개 교구의 시신을 받아 왔다. 누적 200만 구가 넘고, 구덩이 하나에 1,500구씩 묻었다. 1780년 봄비 뒤에 담이 무너져 이웃집 지하실로 시신이 쏟아졌다. 그해 9월 매장 금지 칙령이 내려졌고, 1786년부터 뼈를 카타콤으로 옮겼다. 덜 썩은 시신 다수가 시랍(屍蠟)이 되어 있었고, 그것을 걷어 양초와 비누로 만들었다.

1854 · 1876
존 스노가 런던 콜레라의 원인이 공기가 아니라 물임을 보였고(1854), 로베르트 코흐가 탄저병의 원인균을 밝혀냈다(1876). 1880년대에 세균설이 미아즈마설을 완전히 대체한다. 그러니 이 소설의 인물들은 냄새가 곧 병이라고 진심으로 믿은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19세기
1888년에 인공 사향이 합성되면서 짐승을 죽여야 얻던 재료가 실험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냉침법도 용매 추출에 밀려 사라진다. 사람 손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그리는 조향은 그렇게 사라지기 직전의 기술이다.

읽다 걸리는 낱말들. 위쪽 검색창에 넣어도 여기로 잡힌다.
구리로 만든 증류기. 재료와 물을 넣고 끓이는 몸통, 증기가 모이는 머리, 그것을 식히는 관으로 이루어진다. 연금술에서 온 물건이고 이름도 아랍어(al-anbīq)에서 왔다.
냉침법에 쓰는 유리판을 끼운 나무틀. 유리 양면에 무취의 지방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꽃을 뿌린다. 이 틀을 여러 장 겹쳐 쌓아 두고 며칠마다 꽃을 갈아 준다.
냉침법이나 온침법으로 향을 머금은 지방. 이 자체는 아직 향수가 아니고, 여기에 알코올을 부어 향만 옮겨 받아야 한다.
포마드나 콘크리트를 알코올에 담가 향 성분만 뽑아낸 뒤 알코올을 날린 것. 가장 진한 형태의 천연 향료다.
용매 추출로 얻는 중간 산물. 향 성분과 식물의 밀랍이 섞여 있어 반고체다. 여기서 밀랍을 걷어내면 앱솔뤼트가 된다.
증류나 압착으로 얻는 식물의 향유. ‘essential’ 은 ‘그 식물의 본질(essence)’이라는 뜻이지 ‘필수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증류하고 남은 물. 물에 녹는 향 성분이 조금 남아 있다. 장미수·오렌지꽃물이 이것이다. 부산물이지만 그 자체로 팔린다.
잘 날아가는 향을 붙잡아 두는 재료. 대개 무겁고 느리게 증발하는 것들 — 용연향·사향·수지·백단. 이것이 없으면 향수가 한 시간 만에 사라진다.
원료 병을 계단식으로 늘어놓은 작업대. 앉은 자리에서 손만 뻗으면 수백 병에 닿는다. 건반 앞에 앉은 모습과 닮아서 오르간이라 부른다.
조향사를 부르는 프랑스어 별칭. 향을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뿌린 직후 몇 분 동안 나는 향. 감귤·허브처럼 가볍고 빨리 날아가는 것들이다.
탑이 사라지면 나오는 본체. 20분에서 한 시간쯤 간다. 꽃 향이 대개 여기 있다.
30분쯤 뒤부터 나오고 하루 넘게 가기도 한다. 수지·나무·동물성 재료. 향수의 바닥이다.
직역하면 ‘쾰른의 물’. 18세기 초 쾰른에서 만들어진 가벼운 감귤 향수의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옅은 농도 등급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썩은 것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가 병을 옮긴다는 설명. 그리스어 μίασμα(오염)에서 왔다. 히포크라테스부터 1880년대까지 의학의 주류였다. 이 믿음 때문에 향료는 사치품이 아니라 방역 물자였다.
향료를 담아 목이나 허리에 차던 구멍 뚫린 금속 구슬. 어원은 프랑스어 pomme d'ambre — ‘용연향 사과’다. 오렌지에 정향을 박아 만든 것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파리 레알 옆에 있던 공동묘지. 12세기부터 22개 교구의 시신을 받아 누적 200만 구가 넘었다. 구덩이 하나에 1,500구씩 묻었고, 담을 따라 납골당을 지어 뼈를 쌓았다. 1780년 담이 무너져 이웃집 지하실로 시신이 쏟아지면서 폐쇄됐다.
파리 지하의 옛 채석장. 1786년부터 이노상을 비롯한 묘지의 뼈를 이리로 옮겼다. 지금은 약 600만 명의 유골이 있다.
습하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시신의 지방이 비누 같은 물질로 변한 것. 이노상 묘지를 옮길 때 이것이 대량으로 나왔고, 걷어내어 양초와 비누로 만들어 팔았다.
파리 한복판의 거대한 중앙 시장. 생선·고기·채소가 모이는 곳이라 냄새로 유명했고, 바로 옆이 이노상 묘지였다. 이 소설의 첫 장이 딛고 있는 자리다.
장인의 집에 들어가 숙식하며 배우는 견습생. 임금이 거의 없고 신분상 주인에게 매여 있다.
수련을 마쳤지만 아직 제 가게를 못 여는 기술자. 일당(journée)을 받고 일한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독일권에서는 여러 도시를 떠도는 편력이 관례였다.
조합에 등록해 제 가게를 열 수 있는 사람. 심사작을 내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자리 수가 제한돼 있어서, 실력이 있어도 자리가 없으면 평생 직인으로 남았다.
같은 업종의 장인들이 만든 조직. 그 도시에서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정하고, 값과 품질과 도제 수를 통제했다. 프랑스의 조합은 1791년 혁명기에 폐지된다.
이성과 관찰로 세계를 설명하려 한 18세기의 사조. 볼테르·디드로·달랑베르의 시대다. 이 소설이 냄새라는 가장 원시적이고 언어로 붙잡기 어려운 감각을 한복판에 놓은 것은 그 시대에 대한 응답으로 읽을 수 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1751년부터 낸 28권짜리 대사전.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항목으로 정리하려 한 기획이고 계몽주의의 상징이다. 각 직업의 공정을 그린 도판이 실려 있어 당시의 조향·무두질 작업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사실은 기억이 아니라 문헌에서 확인해 적었다.
사진과 판화는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받았고 전부 퍼블릭 도메인이거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다. 원본 파일명과 라이선스는 build/data/parfum/manifest.py에 그대로 적어 두었다.
Patrick Süskind, Das Parfum: Die Geschichte eines Mörders, Diogenes, 1985. 한국어판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 위해 만든 배경자료다. 스포일러를 넣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다. 이 책에서 특히 조심한 것은 조향 기법 설명이 곧 줄거리 설명이 되는 것이었다 — 그래서 각 기법이 무엇이고 왜 그런지까지만 적고, 소설에서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지는 쓰지 않았다. 원료 사전도 같은 기준이다.
부제에 이미 있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전제로 두었다. 영화(2006)는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