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설명 없이 나오는 조직·개념·법률 용어.
나치당 (NSDAP)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조직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1920년 독일노동자당(DAP)에서 개칭했다. 뉘른베르크에서는 '당 지도부'(Leadership Corps)가 범죄조직으로 판정됐지만 일반 당원 전체는 아니었다.
친위대 (SS)Schutzstaffel조직
직역하면 '보호대'. 히틀러 개인 경호대로 출발해 힘러 아래에서 경찰·정보·강제수용소·무장부대를 모두 거느린 국가 안의 국가가 되었다. 뉘른베르크에서 범죄조직으로 판정됐다.
돌격대 (SA)Sturmabteilung조직
'폭풍대'. 나치당 초기의 거리 폭력을 담당한 준군사조직이다. 1934년 장검의 밤으로 지도부가 숙청된 뒤 껍데기만 남았고, 그래서 뉘른베르크에서는 범죄조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게슈타포Geheime Staatspolizei조직
'비밀국가경찰'의 줄임말. 괴링이 프로이센에서 만들었고 곧 힘러에게 넘어갔다. 영장 없는 '보호구금' 권한이 핵심이었다. 범죄조직 판정을 받았다.
보안국 (SD)Sicherheitsdienst조직
나치당의 정보기관. 하이드리히가 이끌었고 나중에 국가보안본부에 흡수됐다. 범죄조직 판정을 받았다.
국가보안본부 (RSHA)Reichssicherheitshauptamt조직
1939년 게슈타포·형사경찰(Kripo)·보안국을 하나로 묶은 기구. 하이드리히→칼텐브루너로 이어졌고 홀로코스트의 실행 사령부였다. 아이히만의 유대인 담당과(IV B4)가 여기 속했다.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조직
'특별출동집단'. 소련 침공과 함께 군대 뒤를 따라 들어가 유대인·공산당 간부·로마인을 총살한 이동학살부대다. 4개 집단(A~D)이 100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
국방군 최고사령부 (OKW)Oberkommando der Wehrmacht조직
1938년 히틀러가 국방부를 없애고 만든 군 최고기구. 총장이 카이텔, 작전부장이 요들이었다. 뉘른베르크에서 범죄조직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는데, 이 판정이 훗날 '깨끗한 국방군' 신화의 근거로 오독된다.
총통 (퓌러)Führer개념
'지도자'. 1934년 힌덴부르크 사후 히틀러가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합쳐 쓴 칭호다. 함께 온 것이 지도자원리(Führerprinzip) — 명령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고 책임은 오직 지도자에게만 있다는 원칙이다. 뉘른베르크 피고들이 반복해 기댄 논리이자, 헌장 제8조가 미리 막아 둔 논리다.
획일화Gleichschaltung개념
전기 용어에서 온 말로 '같은 회로에 맞춰 정렬시킨다'는 뜻이다. 1933~34년에 정당·노조·언론·주정부·직능단체를 나치 조직에 흡수하거나 해산시킨 과정을 가리킨다.
생활권Lebensraum개념
'삶의 공간'. 독일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동유럽으로 확장해 그곳 주민을 몰아내거나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바르바로사 작전과 동부 절멸정책의 이념적 근거다.
최종 해결Endlösung개념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유럽 유대인 절멸 정책을 가리키는 나치의 관료적 완곡어다. 문서에 학살이라는 말 대신 이런 표현만 남았다는 점이 뉘른베르크 검찰의 입증 과제이기도 했다.
배후중상설Dolchstoßlegende개념
'등 뒤의 칼' 신화. 1차 대전에서 독일군은 전장에서 지지 않았고 후방의 유대인·사회주의자·공화주의자가 배신해서 졌다는 주장이다. 사실이 아니지만 바이마르 내내 우파의 결집 논리였고, 나치 반유대주의의 기둥이 되었다.
병합Anschluss사건
1938년 3월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자이스잉크바르트가 오스트리아 총리로서 독일군 진주를 '요청'하는 형식이 취해졌다.
수정의 밤Kristallnacht사건
1938년 11월 9~10일의 전국적 유대인 습격. 깨진 유리창이 거리에 반짝였다는 데서 온 이름인데, 사건의 성격을 미화하는 표현이라 요즘은 '11월 포그롬'으로 부르기도 한다.
장검의 밤Nacht der langen Messer사건
1934년 6월 30일~7월 2일, 히틀러가 돌격대 지도부 룀 등을 숙청한 사건. 이 유혈 숙청이 사후에 '국가긴급방위'로 합법화되면서 법치의 마지막 형식이 사라졌다.
애시캔Camp Ashcan / CCPWE No. 32장소
룩셈부르크 몬도르프레뱅의 팰리스 호텔에 설치된 고위 나치 수용소. 1945년 5~8월에 86명이 수용됐다. 이 책의 1막이 벌어지는 곳이다. 영국이 운영한 기술자 수용소는 '더스트빈'이라 불렸다.
600호 법정Saal 600장소
뉘른베르크 법원 청사의 법정. 피고석·판사석·통역 부스를 넣기 위해 개조됐다. 지금도 남아 있고 기념관으로 공개된다.
슈판다우 형무소Spandau장소
베를린의 형무소. 유기·종신형을 받은 7명이 여기서 복역했다. 1966년 슈페어와 시라흐가 나간 뒤 헤스 한 사람을 위해 4개국이 21년간 운영했고, 1987년 헤스가 죽자 곧바로 철거됐다.
런던 헌장London Charter / Nuremberg Charter법
1945년 8월 8일 4개국이 서명한 국제군사재판소의 설립 근거. 세 죄목을 정의하고, 국가원수 면책(제7조)과 상급자 명령(제8조)을 방어사유에서 배제했다.
평화에 반한 죄Crimes against Peace법
침략전쟁의 계획·개시·수행. 재판부는 이것을 '최고의 국제범죄'라고 불렀다 — 다른 모든 전쟁범죄의 악을 그 안에 누적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죄목 1(공모)과 2가 여기 해당한다.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법
민간인에 대한 살해·절멸·노예화·박해. 뉘른베르크에서 처음 성문화된 개념이고, 오늘날 국제형사재판소(ICC)까지 이어진다. 다만 재판부는 1939년 이전 독일 국내에서 벌어진 유대인 박해는 침략전쟁과의 연결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할 밖으로 두었다.
소급처벌 금지nullum crimen sine lege법
'법 없이 범죄 없다'. 뉘른베르크에 대한 가장 강한 법적 비판이다 — 행위 당시 존재하지 않던 죄목으로 처벌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죄들이 이미 관습국제법에 있었다고 답했다.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법
재판을 이긴 쪽만 열었고 연합국의 범죄(드레스덴 폭격, 카틴 학살, 독소조약의 폴란드 분할)는 다뤄지지 않았다는 비판. 실제로 소련은 카틴을 독일 소행으로 기소했다가 증거가 약해 판결문에서 빠졌다.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검사
좌우대칭 잉크반점 10장을 보여주고 무엇이 보이는지 묻는 투사검사. 켈리는 이것으로 '나치의 정신 구조'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검사 결과의 해석을 두고 켈리와 길버트가 갈라졌고, 원자료는 이후 수십 년간 여러 연구자에게 재분석되며 논쟁을 이어갔다.
배심 없는 재판법
뉘른베르크에는 배심이 없었다. 4개국이 각각 정판사 1명과 예비판사 1명을 냈고, 유죄와 양형 모두 판사 4명의 다수결로 정했다. 가부동수면 재판장이 속한 쪽이 이겼기 때문에, 세 건의 무죄는 표가 갈린 결과다.
동시통역Simultaneous interpretation기술
뉘른베르크는 4개 언어(영·독·불·러) 동시통역이 대규모로 쓰인 첫 국제재판이다. IBM이 장비를 댔고 법정 전원이 헤드폰을 썼다. 오늘날 국제회의 통역 방식의 원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