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 · 1848
땅이 바뀌다
1836년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떨어져 나왔고,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끝나며 리오그란데가 국경이 됐다. 거기 살던 멕시코 사람들은 이사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 사람이 됐다.

1980년 · 서부 텍사스, 멕시코 국경
미국이 전쟁과 물가에 지쳐 있던 해, 멕시코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텍사스 서쪽 끝의 사막. 카우보이 모자가 평상복이고, 국경 마을 사람의 다수가 멕시코계이고, 집집마다 총이 있던 곳이다. 이 페이지는 그 시대와 땅과 사람과 물건을 모았다. 줄거리·결말·인물의 운명은 없다.
이 소설을 따라가는 데 필요한 배경을 열 가지로 추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각 장에 있다.
베트남에서 지고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정부를 믿는 미국인이 1964년 77%에서 1980년 약 4분의 1로 줄었다. 이긴 2차 대전 세대와 환영 없이 돌아온 베트남 세대가 함께 살았다. 국경을 넘는 마약은 그 무렵 산업이 됐고, 법원이 없는 시장이라 다툼은 폭력으로 풀렸다.
텍사스는 한반도의 약 3배다. 이야기는 서울 열 배 넓이에 1,600명이 사는 테렐 카운티에서 시작하고, 소설에 나오는 다른 도시들은 거기서 직선으로 수십~430km 떨어져 있다. 땅은 치와와 사막, 국경은 자주 마르는 강이다.
국경 도시들은 강 위의 다리로 이어져 있었다. 1980년에는 걸어서도 건넜고, 돌아올 때는 미국 쪽 검사관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국경에서 떨어진 국도에도 검문소가 있었다.
서부 텍사스에서 카우보이 차림은 평상복이다. 부츠는 소가죽이 기본이고 도마뱀·뱀·타조·악어 가죽은 비싸다. 모자는 여름엔 밀짚, 서늘하면 펠트다.
소설은 총을 제조사 이름으로 부른다. 그 총들과 도축장의 볼트건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으로 본다. 총신을 자른 산탄총과 소음기는 1980년에도 연방 중범죄였다.
휴대전화도 민간 위성항법(GPS)도 없다. 길 위에 있는 사람과 연락하려면 그가 공중전화 앞에 멈춰 서야 한다. 이동은 픽업트럭으로, 잠은 국도변 모텔에서.
미국 카운티의 보안관은 경찰서장이 아니다. 주민이 4년마다 선거로 뽑고, 그를 해임할 상급자가 없다. 사람이 적은 카운티에서는 보안관과 대리 몇 명이 넓은 땅의 치안을 다 맡았다.
제목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가 1926년에 쓴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행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에서 왔다.
매카시는 1976년부터 국경 도시 엘패소에 살았다. 그는 대사에 따옴표를 쓰지 않는다. 누가 말하는지 아는 단서 네 가지를 정리했다.
국경 카운티 주민의 절반 안팎에서 열에 아홉이 멕시코계였다. 대부분 미국 시민이었지만 오래 차별받았고, 강 건너 멕시코는 밀입국과 밀수의 땅으로 비쳤다.
1980년은 한국에도 무거운 해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고 12월 군사반란(12·12)이 일어났으며,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이 시민을 진압했다. 같은 석유 파동이 한국 경제도 덮쳐 그해 한국은 6·25 전쟁 뒤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석유값에 흔들린 것은 같지만, 그해 미국이 겪은 불안은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된 민주국가의 피로였다는 점이 다르다.
총과 마약은 한국 독자에게 가장 낯선 것이다. 한국은 민간인이 총을 사실상 가질 수 없고, 마약도 오래 드물었다. 그래서 「집에 총이 있다」, 「마약 시장에 큰돈이 돈다」는 말이 1980년 미국에서 얼마나 평범하고 또 얼마나 무거운 일이었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01장과 05장이 그 감을 잡는 데 쓰인다. 규모도 다르다. 1980년 미국의 살인율은 지금 한국의 20배쯤이었고, 서부 텍사스에서는 서울–부산 거리가 이웃 마을 사이다.
왼쪽 목차에서 한 장(章)씩 골라 본다 — 한 번에 한 주제만 뜬다. 처음부터 다 읽을 필요는 없고, 장마다 맨 위의 요약 상자만 읽어도 된다. 책을 읽다 걸리는 것이 생기면 그때 해당 장을 펴 보면 된다.
검색창에 낱말을 넣으면 페이지 전체에서 그 대목만 뽑아 준다. “보안관”, “산탄총”, “리오그란데” 같은 말이 걸렸을 때 쓰면 된다.
스포일러는 없다. 사건·결말·인물의 운명이 들어 있지 않고, 코엔 형제의 영화(2007)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 영화 줄거리가 곧 소설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지고 물가에 지친 나라. 이긴 전쟁의 세대와 끝나 버린 전쟁의 세대가 함께 살았고, 국경 너머로는 마약이 큰돈이 되어 넘어오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인은 정부를 대체로 믿었다. 1964년 「연방정부가 대체로 옳은 일을 한다」는 대답이 77%였다. 그 믿음을 깎은 것이 두 사건이다. 정부는 이기고 있다고 말했지만 베트남 전쟁은 10년을 끌었고 미군 5만 8천여 명이 죽은 채 1975년 끝났다. 그 사이 닉슨 대통령은 상대 당 사무실 도청과 그 은폐(워터게이트)로 1974년 임기 중에 물러났다. 1980년 같은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은 약 4분의 1이었다.
살림도 팍팍했다. 1973년과 1979년 두 번의 석유 파동으로 원유값이 뛰자 물가 전체가 따라 올라, 1980년 한 해 물가 상승률이 13.5%였다. 경기는 나쁜데 물가만 오르는 이 상태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 부른다. 그해 이란에는 미국 외교관 등 52명이 인질로 잡혀 있었고, 11월 미국은 현직 카터 대신 레이건을 뽑았다.
범죄도 정점이었다. 1980년 미국 살인율은 10만 명당 10.2명 — 지금 한국(약 0.5명)의 20배쯤이다. 1982년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의 48%가 「집 근처에 밤에 혼자 걷기 무서운 곳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시기 석유가 나는 서부 텍사스 북쪽(오데사·미들랜드)만은 기름값 덕에 호황이었다.
소비자물가로 따지면 1980년의 1달러는 2025년의 약 4달러다. 소설에 나오는 금액은 대략 네 배를 하면 지금 감각이 된다. 다만 그 사이 임금도 올랐으므로 어림셈일 뿐이다.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됐고 적이 분명했다. 나라 전체가 동원됐고, 이겼다. 돌아온 병사들은 환영을 받았고 제대군인원호법(GI Bill, 1944)으로 학비와 주택 융자를 받았다. 이 세대는 자기가 한 일을 공개적으로 자랑할 수 있었다. 1980년에 50~60대다.
징집으로 갔다. 대학에 다니면 입대를 미룰 수 있어 가난한 집 아들과 노동자 계층이 더 많이 갔다. 국내 여론은 둘로 갈렸고, 전쟁은 미국이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끝났다. 돌아온 병사에게 환영 행진은 없었고, 군복을 숨기는 사람도 있었다. 1980년에 20대 후반~30대다.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진단 기준서 DSM-III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처음 올렸다. 그 전에는 「포탄 충격」(셸 쇼크, 1차 대전), 「전투 피로」(2차 대전) 같은 말로 불렸고 대개 개인이 나약한 탓으로 여겨졌다. 이 등재를 끈질기게 요구한 것이 베트남 참전 군인들과 그들을 진료한 정신과 의사들이다.


한국도 1964~73년 베트남에 연인원 약 32만 명을 보냈고 약 5천 명이 전사했다. 1980년 한국에도 30~40대가 된 베트남 참전 세대가 있었다. 그리고 1980년은 한국에도 무거운 해였다 —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이 시민을 진압했고, 같은 석유 파동에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약 −1.6%)을 했다. 다만 그해 미국이 겪은 불안은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된 민주국가의 피로였다는 점이 다르다.
1970년대 말은 미국 마약 사용의 정점이다. 1979년 18~25세의 35%가 지난 한 달 사이 대마를 했고, 고3의 절반이 그해 대마를 피워 봤다. 수요가 그만큼 컸고, 그 큰 몫이 멕시코 국경을 넘어왔다. 무엇이 오갔는지는 셋만 알면 된다.
잎과 꽃을 말려 담배처럼 피운다. 부피가 커서 트럭과 작은 비행기로 날랐다. 멕시코가 큰 공급지였다. 1937년부터 연방법으로 금지된, 국경을 넘는 오래된 품목이다.
양귀비의 아편을 정제한 마약으로 주사로 맞는 일이 많다. 1970년대 중반 미국 헤로인의 약 90%가 멕시코산 갈색 헤로인이었다. 작고 비싸서 몸이나 차에 숨겨 넘겼다.
남미 코카 잎에서 뽑은 흥분제. 1970년대 말 부자의 마약으로 유행했다. 콜롬비아 조직이 정제해 아직은 카리브 해를 거쳐 플로리다로 들여왔다. 멕시코 육로로 옮겨 오는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얼마나 컸나. 1980년 미국인이 불법 마약에 쓴 돈은 연방정부 추정으로 680억~890억 달러 — 같은 해 한국 경제 전체보다 컸다. 값의 대부분은 원료가 아니라 압수·체포를 무릅쓰는 위험의 값이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1970년대 초까지는 가방이나 몸에 숨겨 나르는 소규모 밀수였다. 1970년대 말 콜롬비아의 밀매 조직들이 이것을 생산·운반·돈세탁을 나눠 맡고 비행기로 나르는 산업으로 바꿨다. 1982년 미국이 카리브 해 경로를 조이자 그 길은 멕시코 육로로 옮겨 온다.
왜 폭력이 따라오나. 불법 시장에는 경찰도 법원도 없다. 물건을 뺏기거나 돈을 떼여도 신고할 수 없으니, 약속을 지키게 하는 수단이 폭력이 된다. 1979년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는 마약 밀수업자의 청부로 연방 판사가 살해됐다.
한국의 마약사범은 1984년 1,027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3명이 안 됐다. 당시 한국의 마약 사건은 주로 일본으로 내보낼 히로뽕을 몰래 만드는 일이었다. 법은 오히려 한국이 무겁다 — 영리 목적 밀수는 지금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이고, 1980년 미국 연방법의 밀매 최고형은 15년이었다. 다른 것은 법의 무게가 아니라 시장의 크기다.
한국에서 출발해 텍사스로, 사막과 국경의 강으로, 그리고 소설의 무대로 좁혀 간다.
치와와 사막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더운 사막이다. 양쪽 산맥이 바다의 습기를 막아 산 사이 고원에 마른 공기만 내려온다. 해발 800m 안팎의 돌과 자갈 땅이라 여름 낮은 덥고 겨울밤은 언다. 나무는 거의 없고 가시 관목이 드문드문 선다.
리오그란데는 1848년부터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이다. 상류의 콜로라도·뉴멕시코와 엘패소 일대에서 농사용으로 물을 끌어 써서, 엘패소 아래 수백 km는 물이 끊기는 때가 잦다. 오히나가 맞은편에서 멕시코 쪽 지류가 합류해야 다시 흐른다. 그 아래도 강폭이 좁고 얕은 곳이 많다.


드라이든 29km · 랭트리 88km · 포트스톡턴 96km · 오조나 131km · 델리오(강 건너 아쿠냐) 168km · 소노라 175km · 오데사 189km · 미들랜드 208km · 이글패스(강 건너 피에드라스네그라스) 243km · 밴혼 254km · 우발디 272km · 샌안토니오 385km · 엘패소 430km.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전이 140km, 서울–대구가 238km, 서울–부산이 325km다. 실제 도로는 이보다 길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 주유소 하나 없는 구간도 있다. 테렐 카운티는 서울의 열 배 넓이에 1980년 1,595명이 살았다.



1980년 텍사스와 멕시코 사이를 사람들은 어떻게 오갔나. 다리, 검사관의 질문, 가지고 넘으면 안 되는 것, 국경에서 떨어진 국도의 검문소.
리오그란데의 국경 도시들은 강 위의 다리로 짝지어져 있다. 다리 한가운데가 국경이고, 양쪽 끝에 각 나라의 검사소가 있다. 차로도 걸어서도 건넜다. 국경 도시 사람들에게 강 건너는 외국이면서 장 보러 가는 옆 동네였다.
| 짝지은 도시 | 1980년의 다리 | 알아 둘 점 |
|---|---|---|
| 엘패소 – 시우다드후아레스 | 다리 여럿. 파소 델 노르테 다리(1967) 등이 있고, 통행료가 없는 「아메리카스 다리」는 멕시코에서 「무료 다리」라 불린다. | 서부 텍사스에서 가장 붐비는 건널목. 두 도시가 사실상 한 시가지다. |
| 프레시디오 – 오히나가 | 옛 나무 다리. 1900년대 초부터 쓰던 개인 소유 다리였다. | 지금 다리는 1985년 무렵 놓였다. |
| 델리오 – 시우다드아쿠냐 | 1930년 다리. | 1987년에 다시 놓았다. |
| 이글패스 – 피에드라스네그라스 | 1954년 다리. 검사소 건물은 1960년. | 도심에서 바로 다리로 이어진다. |


1980년 미국 쪽 검사소에는 두 기관이 함께 있었다. 세관(재무부 소속)은 물건을, 이민귀화국(INS, 법무부 소속)은 사람을 본다. 국경순찰대도 이민귀화국 소속이다. 두 기관은 2003년에야 하나(세관국경보호청)로 합쳐졌다.
미국 시민이 육로로 돌아올 때는 말로 국적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했다. 검사관은 국적과 가져오는 물건을 묻고, 미심쩍으면 따로 불러 다시 조사할 수 있다. 말로 밝히는 방식은 2008년에 끝났고, 2009년부터는 여권이나 그에 준하는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그 대신 국경에서는 수색의 문턱이 낮다. 미국 대법원은 1977년 국경에서의 수색은 「국경에서 한다는 사실만으로」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집 안이라면 영장이 필요할 일을 국경에서는 영장 없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국경 근처 멕시코 주민에게는 1953년 두 나라 협정으로 생긴 국경 통행증을 내줘서, 국경 가까운 곳에 짧게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총. 멕시코는 1972년 「연방 화기·폭발물법」으로 민간의 총을 엄격히 묶었다. 허가 없이 총이나 탄알을 몰래 들여오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 지금 미국 국무부는 빈 총 한 정, 탄알 한 발로도 멕시코에서 최대 징역 5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총이 흔한 텍사스와 강 하나 건너 법이 정반대다.
현금. 미국 은행비밀법(1970)은 현금을 5,000달러 넘게 들고 국경을 넘을 때 신고하게 했다. 1984년 1만 달러로 올라 지금에 이른다. 마약 돈이 현금으로 오가자 돈의 흐름을 국경에서 붙잡으려고 만든 규칙이다.
미국의 보안관이나 경찰은 멕시코 땅에서 아무 권한이 없다. 멕시코 쪽에서 사람을 잡아 오려면 두 나라 정부 사이의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강 하나가 경찰권의 끝이다.
국경순찰대는 국경선만 지키지 않는다. 국경에서 수십 km 안쪽의 큰 도로에 고정 검문소를 두고, 국경을 몰래 넘은 사람이 내륙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을 막는다. 미국 법은 국경에서 「합리적인 거리」 안에서 단속을 허락하고, 규정은 그 거리를 직선 100마일(약 160km)로 정했다.
1976년 미국 대법원은 이런 고정 검문소에서 특별한 의심이 없어도 차를 잠깐 세우고 묻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마르티네스-푸에르테 판결). 서부 텍사스의 대표가 엘패소 동쪽 I-10 고속도로 시에라블랑카 검문소다. 국경에서 직선 약 22km 떨어져 있고, 1979년에는 24시간 돌아갔다. 텍사스를 맡은 연방 항소법원은 이 검문소를 「사실상 국경」으로 보아, 1980년 무렵에는 여기서도 국경처럼 차를 뒤질 수 있었다(1987년 판례가 바뀐다).

빅벤드 일대에는 정식 다리가 없는 작은 건널목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부는 세관원이 가끔 나오는 작은 통관 지점이었고, 관광객은 몇 달러를 내고 나룻배나 당나귀로 강 건너 멕시코 마을에 다녀왔다. 이 건널목들은 2002년 5월 완전히 막혔다.
정해진 곳이 아닌 데로 미국에 들어오는 것은 외국인에게 범죄다. 1980년 연방법으로 처음이면 6개월 이하 징역이나 500달러 이하 벌금, 다시 하면 2년 이하의 중범죄였다. 강이 얕고 자주 마르는 구간이 길어서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곳이 많았다(10장).


한국 사람에게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공항에서 여권에 도장을 받는 일이다. 땅으로 이어진 국경은 휴전선뿐이라 걸어서 넘을 수 없다. 1980년 텍사스 국경 도시 사람들은 다리를 걸어서 건너 장을 보고, 돌아올 때 「미국 시민이요」 한마디로 들어왔다. 그만큼 쉬웠고, 그래서 검사관의 질문과 눈썰미가 국경의 전부였다.
서부 텍사스에서 웨스턴 차림은 의상이 아니라 평상복이다. 소설에 설명 없이 나오는 부츠·모자·버클이 실제로 어떤 물건인지.
굽이 높고 목이 정강이까지 오며 끈이 없다. 높은 굽은 발이 등자(안장에 달린 발걸이) 속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고, 긴 목은 가시덤불과 뱀을 막는다. 굽이 낮고 네모나며 앞코가 둥근 것은 로퍼(roper)라 해서 말에서 내려 걸으며 일하기 좋다.
가죽은 소가죽이 기본이다. 그 위로 비늘 무늬가 잔 도마뱀, 무늬가 큰 방울뱀·비단뱀, 깃털 뽑은 자리마다 동그란 돌기가 남는 타조, 가장 비싼 악어가 있다. 텍사스의 이름난 부츠 회사로는 샌안토니오의 루케세(1883), 엘패소의 토니라마, 포트워스의 저스틴이 있다.





챙이 넓고 윗부분(크라운)이 높다. 더운 철에는 바람이 통하는 밀짚, 서늘한 철에는 털을 다져 만든 펠트를 쓴다. 펠트는 양털·토끼털보다 비버 털이 많을수록 촘촘하고 비싸며, 모자 회사들은 이것을 「X」의 개수로 표시했다. 대표 상표가 스테트슨이라 카우보이 모자를 그냥 스테트슨이라고도 부른다.




웨스턴 셔츠는 어깨에 덧댄 천(요크)이 장식처럼 들어가고 단추 대신 진주빛 똑딱단추(펄 스냅)를 단다. 일하다 옷이 걸리면 툭 떨어진다. 바지는 랭글러 청바지가 카우보이의 바지로 자리 잡았다. 허리의 큰 버클은 은·금으로 무늬를 새겨 사는 것과, 로데오 우승자가 상으로 받는 트로피 버클이 있다.






매카시는 총을 제조사 이름으로 부른다. 그 이름이 실제로 어떤 총인지 사진과 함께 모았다. 도축장의 볼트건도 여기 넣었다.
사진은 같은 종류의 실물이다 — 소설 속 바로 그 총의 사진은 아니다. 소설이 모델명까지 밝히지 않은 것은 밝히지 않았다고 적었다.










미국의 값싼 반자동 권총. 이 이름은 1985년 무렵 나왔다 — 1980년에는 아직 없었다.
1980년의 법: —
소련제 돌격소총(1947)과 군용 연발 총.
1980년의 법: 기관총.
볼트건(captive bolt pistol)은 소나 돼지를 도살하기 전에 기절시키는 공구다. 짐승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면 안에 든 쇠막대(볼트)가 순간적으로 튀어나와 이마를 친 뒤 다시 기기 안으로 들어간다. 막대가 몸체에 붙잡혀(captive) 있어서 총알처럼 날아가지 않는다.
막대를 미는 힘에 따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화약식이다. 탄알 없는 공포탄을 한 발씩 넣고 그 폭발로 막대를 민다. 아래 두 사진이 이 종류다. 다른 하나는 압축공기식이다. 공구 뒤에 호스를 달아 압축공기 통이나 공기 압축기에 잇고, 그 공기 압력으로 막대를 민다. 공포탄을 갈아 넣을 필요가 없어 짐승을 쉬지 않고 다루는 큰 도축장에서 쓴다. 공구만 보면 굵은 쇠막대이고, 공기통까지 합쳐야 전체 모습이 된다.


산탄총의 총신을 쇠톱으로 잘라 짧게 만든 것을 소드오프 샷건(sawed-off shotgun)이라 한다. 왜 자르나. 첫째 이유는 숨기기 쉬워서다. 긴 사냥총은 외투 안에 들어가지 않지만 짧게 자르면 들어간다. 개머리판까지 잘라 손잡이만 남기면 더 작아진다. 총구 끝에서 산탄을 모아 주는 부분이 잘려 나가 가까운 거리에서 산탄이 더 넓게 퍼진다.
그래서 이것은 사냥꾼의 총이 아니라 범죄의 총으로 여겨졌다. 1920~30년대 금주법 시대 갱단이 이 총과 톰슨 기관단총으로 서로를 쏘았고, 그 폭력에 놀란 의회가 1934년 국가화기법(NFA)을 만들었다. 법은 총신 18인치(약 46cm) 미만, 또는 전체 길이 26인치(약 66cm) 미만의 산탄총을 따로 묶었다. 쇠톱 하나로 만들 수 있지만, 미리 당국의 허가를 받고 세금을 내지 않고 그렇게 자르면 그 순간 연방 중범죄다.
산탄은 크기가 여러 가지다. 가장 굵은 축인 더블오 벅샷(00 buckshot)은 지름 약 8.4mm 납알 아홉 개 안팎이 한꺼번에 나가 사슴이나 사람을 겨냥한다. 숫자가 커질수록 알이 작아져, 10호 산탄은 작은 새를 잡는 데 쓴다.




소음기(silencer, suppressor)는 총구에 다는 통이다. 총알을 밀어낸 화약 가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소리를 통 속의 칸막이들이 붙잡아 천천히 빼낸다. 이름과 달리 소리를 없애지 못하고 줄일 뿐이다. 국가화기법은 소음기도 기관총과 같이 묶었다. 법에서는 공장 제품이든 손으로 만든 것이든 총소리를 줄이는 장치면 모두 소음기다.
권총이나 소총의 소음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산탄총 소음기는 드물었다. 산탄총은 총구가 굵고 화약 가스가 많아서 통도 크고 굵어야 하고, 납알 여러 개와 그것을 싸는 마개가 한꺼번에 지나가야 한다. 시중에 파는 산탄총 소음기가 처음 나온 것은 2014년(실렌서코의 「살보 12」, 길이 약 30cm)이다. 그러니 1980년에 산탄총에 소음기를 달았다면 그것은 손으로 만든 불법 물건이다. 소설에 나오는 것도 공방에서 만든 것으로, 길이가 한 자(약 30cm)에 맥주 캔만 한 굵기로 묘사된다.


미국 헌법에 1791년 덧붙인 수정헌법 제2조는 「인민이 무기를 보유하고 휴대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적었다. 영국과 싸워 독립한 사람들은 상비군을 가진 중앙 권력을 경계했고, 스스로 무장한 시민을 자유의 보루로 여겼다. 그러나 1980년의 텍사스 시골에서 총은 법 이전에 생활 도구였다. 경찰이 멀리 있는 땅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사슴과 새를 잡는 데 쓰는 물건이다.
두 집에 한 집. 총이 있는 미국 가정의 비율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에 가장 높았다 — 조사에 따라 45~50%다. 2014년에는 31%였다.
텍사스의 사냥. 1980년 무렵 텍사스에서는 사냥 면허가 해마다 약 110만 장 팔렸다. 대략 열세 명에 한 명꼴이다. 가장 인기 있는 사냥감은 흰꼬리사슴이다.
총에 의한 죽음. 1980년 미국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사람은 약 1만 5,500명이었다.
| 종류 | 생김새와 쏘는 것 | 주로 어디에 | 1980년의 법 |
|---|---|---|---|
| 소총 (rifle) | 총신 안에 나선 홈(강선)이 있어 탄알 한 발이 돌면서 멀리 곧게 날아간다. 어깨에 대고 쏜다. | 사슴 사냥. 텍사스 사냥꾼의 소총에는 흔히 조준경(망원 렌즈)이 달려 있다. | 보통 소총은 연방 등록 대상이 아니다. 총신 16인치(약 41cm) 미만으로 짧게 만든 것만 NFA 규제를 받는다. |
| 산탄총 (shotgun) | 한 번에 작은 납알 여러 개(산탄)가 퍼져 나간다. 멀리는 못 가지만 가까이서는 빗나가기 어렵다. | 새·토끼 사냥, 집 지키기. 미국 시골 집에 가장 흔한 총 가운데 하나다. | 보통 산탄총은 등록 대상이 아니다. 총신 18인치(약 46cm) 미만 또는 전체 26인치(약 66cm) 미만으로 줄이면 NFA 규제 대상이다. |
| 권총 (pistol · handgun) | 한 손으로 쥐는 짧은 총. 탄창을 손잡이에 꽂는 자동권총과 탄알이 든 원통이 도는 리볼버가 있다. | 몸에 지니는 호신용, 경찰의 기본 무기. | 판매는 연방 면허를 가진 총포상을 거친다(1968년 총기규제법). 몸에 숨겨 다니는 것은 주마다 규칙이 달랐다. |
| 기관단총 (submachine gun) | 권총탄을 쓰는 작은 자동화기. 방아쇠를 당기고 있으면 연달아 나간다. | 군대·경찰 특수부대. | 기관총으로 분류되어 NFA 규제 대상이다. 1980년에는 등록과 $200 세금, 당국의 승인을 거치면 민간인도 가질 수 있었다. |
| 기관권총 (machine pistol) | 권총만 한 크기에 연발이 되는 총. 기관단총을 더 짧게 만든 것을 이렇게도 부른다. | 경호·특수부대. | 연발이 되므로 기관총과 같이 NFA 규제 대상이다. |
| 소음기 (silencer · suppressor) | 총구에 다는 통. 소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줄인다. | 군·경 특수 작전, 일부 사냥·사격. | NFA 규제 대상이다. 등록과 $200 세금을 거쳐야 했다. |
한국은 1961년부터 법으로 민간의 총을 엄격히 묶어 왔다. 민간인이 가질 수 있는 것은 허가받은 사냥총과 공기총 정도이고, 엽총은 경찰서에 맡겨 두었다가 수렵기간에만 꺼내 쓴다. 2015년 한국의 민간 총기는 공기총과 엽총을 합쳐 약 16만 정이었다. 같은 무렵 미국 민간의 총은 수억 정으로 추산된다. 「총이 집에 있다」는 말이 한국과 미국에서 가리키는 세계가 이만큼 다르다. 그래도 미국에서도 기관총·총신 자른 산탄총·소음기만은 한국만큼이나 무겁게 다뤘다.
소설이 설명 없이 지나가는 사물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만 적었다.
포드 F 시리즈, 셰비 C/K 같은 1970~80년대 미국 픽업.
서부 텍사스에서 차는 신발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가 수십~수백 km이고 대중교통이 없다. 짐칸이 열린 픽업은 목장·유전 일에 쓰는 기본 차다.
고속도로변에 방문이 바깥으로 바로 열리는 숙소. 주차장이 곧 복도다.
호텔과 다르다 — 로비를 지나지 않고 차에서 방으로 바로 들어간다. 이름은 motor + hotel. 자동차 여행이 늘어난 1950년대에 미국 국도를 따라 퍼졌다.
동전을 넣고 거는 길가의 전화기.
1980년에는 휴대전화가 없다. 이동 중인 사람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고, 전화를 걸려면 공중전화나 집·사무실의 유선전화가 있는 곳에 멈춰 서야 한다.



휴대전화가 없다. 미국에서 상용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1983년이고, 그 뒤로도 오래 비싼 물건이었다. 위성항법(GPS)도 민간에는 없다. 미군의 GPS 위성은 1978년부터 쏘아 올렸지만 위성이 다 갖춰지고 민간 수신기가 퍼진 것은 1990년대다. 지도는 종이이고, 위치를 아는 방법은 표지판과 이정표다. CCTV도, 신용카드 결제 기록도 지금처럼 어디에나 있지 않았다.


한국 독자가 미국 소설에서 가장 자주 오해하는 자리. 보안관은 경찰서장이 아니다.
보안관(sheriff)이라는 자리는 중세 잉글랜드의 shire-reeve, 곧 「주(shire)의 관리(reeve)」에서 왔다. 왕이 지방에 보내 세금을 걷고 치안을 맡기던 관리다. 미국은 이 자리를 들여오면서 왕이 임명하는 대신 주민이 직접 뽑는 자리로 바꿨다. 권력을 멀리 있는 정부가 아니라 가까운 주민에게 묶어 두려는 생각이다. 지금 미국 보안관의 95% 이상이 선출직이다.
여기서 두 가지가 따라 나온다. 첫째, 상급자가 없다. 시장이 자를 수 있는 시경찰서장과 달리, 보안관은 주민의 다음 표 말고는 그를 내보낼 사람이 없다. 둘째, 그는 이웃이다. 인구 1,600명 카운티에서 보안관은 주민 대부분을 얼굴로 안다. 수사가 서류보다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되는 일이 많다. 하는 일도 넓어서 순찰·수사만이 아니라 유치장 운영, 법원 경비, 영장 송달까지 맡는다. 보안관이 임명하는 부하를 대리(deputy)라고 부른다.
| 누구 | 뽑는 방법 | 관할 | 하는 일 | 알아 둘 점 |
|---|---|---|---|---|
| 카운티 보안관 | 선거 · 텍사스는 4년 | 카운티 전역 | 순찰·수사, 유치장 운영, 법원 경비, 영장·소환장 송달, 압류 집행 | 미국 보안관의 95% 이상이 선출직이다. 위에서 해임할 상급자가 없다 — 바꿀 수 있는 것은 주민의 표다. 사람이 적은 카운티의 보안관 사무실은 보안관과 대리 몇 명이 전부인 경우가 흔하다. |
| 시(市) 경찰 | 시장·시의회가 임명 | 시 경계 안 | 도시 치안 전반 | 임명직이라 지휘 계통이 있다. 보안관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이것이다. |
| 주(州) 경찰 · 텍사스 레인저 | 주정부가 임명 | 주 전역 | 고속도로 순찰, 주 단위 중범죄 수사 | 텍사스 레인저는 1823년 무렵 시작된 오래된 조직으로, 1935년부터 주 공공안전부(DPS)에 속한다. 지역 기관이 요청하면 큰 사건 수사를 돕는다. |
| 국경순찰대 (Border Patrol) | 연방 공무원 | 국경 일대 | 밀입국 단속, 검문소 운영 | 1924년에 생겼다. 1980년에는 남서부 국경 전체를 맡은 인원이 지금의 몇 분의 일이었다. |
| DEA (마약단속국) | 연방 공무원 | 전국 · 국외 사무소 | 마약 관련 연방법 집행 | 1973년에 생긴 연방 조직이다. 1980년에는 생긴 지 7년째였다. |
| FBI | 연방 공무원 | 전국 | 연방 범죄 수사 | 연방법 위반이 걸린 사건에 들어온다. 관할이 겹치면 연방 기관이 수사를 맡는 일이 많다. |
한국 경찰은 경찰청장 아래로 이어지는 하나의 국가 조직이고, 경찰서장은 위에서 임명한다. 주민이 경찰 책임자를 직접 뽑는 제도는 없다. 굳이 비유하면, 군수처럼 선거로 뽑힌 사람이 그 군의 경찰서장을 겸한다고 생각하면 가깝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행이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는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이다. 그가 1926년에 쓰고 1928년 시집 『탑』(The Tower)의 첫머리에 실은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행이 이것이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직역하면 「저곳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저곳」은 시인이 두고 떠나는 현실 세계다. 시의 첫 연은 그 세계를 젊은 것들로 가득한 곳으로 그린다 — 서로 껴안은 젊은이들, 나무에서 우는 새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고등어 떼로 붐비는 바다. 낳고 태어나고 죽는 것들이 여름 내내 노래하는 곳이고, 그 감각의 음악에 빠져 아무도 늙지 않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배를 타고 비잔티움으로 간다. 지금의 이스탄불,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예이츠에게는 실제 도시라기보다 황금 모자이크로 뒤덮인 예술과 정신의 세계, 늙지 않는 것이 있는 곳의 상징이다. 시를 쓸 때 예이츠는 예순한 살이었다.


퍼블릭 도메인이라 원문이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다 — en.wikisource.org의 The Tower (Yeats) 항목. 네 연 32행짜리 짧은 시다. 이 페이지는 제목이 된 첫 행만 인용하고 나머지는 풀어서 설명했다.
서부 텍사스 국경 마을의 다수는 멕시코계다. 그들은 왜 거기 있었고, 어떤 대접을 받았고, 국경 너머의 멕시코는 텍사스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쳤나.
텍사스는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1821년 멕시코의 일부가 됐다. 1836년 텍사스가 떨어져 나가고 1848년 리오그란데가 국경이 되자(02장), 거기 살던 멕시코 사람들은 이사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 사람이 됐다. 강 양쪽의 형제와 사촌이 하루아침에 두 나라로 갈렸다.
그 뒤로도 사람은 계속 북쪽으로 왔다. 밀어낸 힘은 1910년 시작된 멕시코 혁명이다. 10년 가까운 내전을 피해 많은 사람이 강을 건넜다. 1914년 1월 오히나가 전투에 진 군인과 가족 수천 명이 한꺼번에 프레시디오 쪽으로 넘어왔다. 끌어당긴 힘은 일자리다. 목장과 철도와 농장은 일손이 모자랐고, 미국 정부는 1942~64년 「브라세로」(팔로 일하는 사람) 계획으로 멕시코 노동자 약 200만 명을 계약직으로 들여왔다. 텍사스의 멕시코계 인구는 1900년 7만여 명에서 1930년 약 70만, 1960년 140만으로 늘었다.
그래서 1980년의 국경 카운티에서는 멕시코계가 다수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이다. 1990년 조사에서 텍사스 멕시코계 가운데 외국 태생은 20%가 안 됐다.
| 지역 (중심 도시) | 1980년 | 최근 | 알아 둘 점 |
|---|---|---|---|
| 텍사스 전체 | 21% | 약 39% (2020) | 1980년 약 300만 명. 1990년 조사에서 텍사스 멕시코계의 외국 태생은 20%가 안 됐다. |
| 엘패소 카운티 (엘패소) | 62% | 약 83% (2020) | 강 건너가 시우다드후아레스다. 서부 텍사스 사람의 대부분이 여기 산다. |
| 테렐 카운티 (샌더슨) | 43% | 약 48% | 강가의 목장 카운티. 1980년 인구 1,595명. |
| 발베르데 카운티 (델리오) | 63% | 약 80% | 강 건너가 시우다드아쿠냐다. |
| 프레시디오 카운티 (프레시디오) | 77% | 약 82% | 강 건너가 오히나가다. 1980년 인구 5,188명. |
| 매버릭 카운티 (이글패스) | 90% | 약 95% | 강 건너가 피에드라스네그라스다. 1982년 미국 전체 카운티 중 스페인계 비율 4위. |

미국 남부에서 흑인은 법률로 분리됐다. 멕시코계는 달랐다. 법은 이들을 백인으로 분류했다. 그래서 분리를 명령하는 법 조문은 없었다. 대신 식당 주인, 학군, 배심원을 뽑는 관리, 묘지 관리인이 관습과 행정으로 갈랐다. 법 조문이 없으니 따지기도 어려웠다.
1954년 미국 대법원의 에르난데스 대 텍사스 판결이 그 모습을 보여 준다. 텍사스 잭슨 카운티에서는 25년 동안 배심원 후보로 약 6,000명이 뽑혔는데, 스페인계 성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같은 카운티의 식당에는 「멕시코인 사절」(No Mexicans Served) 간판이 걸려 있었다.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이것이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백인끼리」라는 형식 뒤에 실제 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판결이다.
학교도 갈렸다. 학군은 경계선을 긋고 학교 자리를 정하는 방식으로 멕시코계 아이들을 「멕시칸 스쿨」에 모았고,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쓰면 벌을 받았다. 법원이 이것을 법적 분리로 판정한 것은 1970년(코퍼스크리스티 학군 사건)이다. 1949년에는 2차 대전에서 전사한 멕시코계 병사의 빈소를 고향 마을 장의사가 거부한 일이 전국 뉴스가 됐다(롱고리아 사건). 그 마을 묘지는 철조망으로 「백인」과 「멕시칸」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투표에도 문턱이 있었다. 텍사스는 1902년부터 투표하려면 인두세(1.5~1.75달러)를 내게 했다. 가난한 농장 노동자에게는 작지 않은 돈이었다. 이 세금은 1966년에야 완전히 사라졌다. 1960년대 남텍사스 농장 노동자의 시급은 50센트 안팎이었다. 1980년에도 격차는 컸다 — 1979년 소득 기준 텍사스 히스패닉의 빈곤율은 28.0%로, 히스패닉이 아닌 텍사스 주민(약 11%)의 2.5배였다.
텍사스 레인저는 1820년대 개척민 자경대에서 시작된 텍사스의 주 수사 조직이다(07장). 텍사스 앵글로에게는 서부의 영웅이지만, 국경의 멕시코계에게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 「로스 디아블로스 테하노스」, 텍사스의 악마들.
1915년 멕시코 혁명의 혼란 속에 국경 너머 무장 세력이 「16세 이상 백인 남자를 죽이자」는 계획(산디에고 계획)을 내걸고 남텍사스를 서른 번쯤 습격해 미국인 21명을 죽였다. 그 보복으로 레인저와 자경단이 멕시코계를 재판 없이 죽이는 일이 이어졌다. 1915~16년 기록된 것만 100~300건이고, 1910년대 전체 희생자 추정은 300명에서 5,000명까지 벌어진다. 이 시기를 스페인어로 「라 마탄사」(학살)라 부른다. 한 앵글로 주민은 뒷날 「레인저는 누구한테 의심만 들면 끌고 나가 쏴 버렸다」고 회고했다.
서부 텍사스에서 가장 큰 일은 1918년 1월 28일 프레시디오 카운티의 포르베니르에서 일어났다. 근처 목장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레인저 B중대와 지역 목장주들이 밤에 마을을 덮쳐 비무장 남자와 소년 15명을 끌어내 처형했다. 주지사는 그 중대를 해산했지만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이 일이 공식 표지판으로 기억된 것은 100년 뒤인 2018년이다. 1980년의 국경 마을에는 이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과 그 자식들이 살고 있었다.
「웻백」(wetback)은 리오그란데를 헤엄쳐 건너 등이 젖은 사람이라는 뜻의 멸칭이다. 1954년 미국 정부는 아예 이 말을 붙인 대규모 단속(웻백 작전)을 벌였다. 흔히 「100만 명을 내보냈다」고 하지만 이 숫자는 부풀려졌다는 연구가 있다. 공식 기록으로는 1955회계연도에 강제 추방 1만 7천여 명, 송환 23만여 명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시민인 멕시코계까지 실려 나가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밀입국이 크게 늘었다. 멕시코의 인구는 빠르게 늘고 일자리는 모자랐고, 미국의 임금은 몇 배였다. 남서부 국경에서 붙잡힌 건수는 1970년 20만여 건에서 1980년 69만 건으로 세 배가 넘었다. 1972년 미국 정부 사진 기록의 설명에는 「높은 미국 임금이 해마다 30만 명의 웻백을 끌어들인다」고 적혀 있다 — 정부 문서도 이 멸칭을 그대로 썼다.
텍사스는 1975년 불법 체류 아이들의 교육에 주 예산을 끊었다. 한 학군은 이 아이들에게 연 1,000달러 수업료를 물렸다. 미국 대법원은 1982년 이것을 위헌으로 판결하며 「우리 안에 글 모르는 하층민을 만들어 대물림하는 일」이라고 썼다. 1980년은 그 다툼이 한창이던 때다.


국경 너머 멕시코 쪽에도 사정이 있었다. 대마와 헤로인을 미국으로 넘기는 밀수는 국경 마을의 오래된 장사였고(01장), 1970년대 말부터 큰 조직으로 커졌다. 1978~80년 무렵 멕시코 서부에서 결성된 과달라하라 카르텔이 대표적이다. 이 조직은 1980년대 중반 콜롬비아 코카인을 미국으로 옮기며 커졌고, 1985년 멕시코에서 미국 DEA 요원을 납치해 살해한다.
멕시코 밀수는 「플라사」(plaza, 광장)라는 말로 설명되곤 한다. 국경을 건너는 길목 도시 하나를 한 조직이 맡아 그 구간의 밀수를 관리하고, 그 대가로 경찰과 관리에게 돈을 대는 방식이다. 한 기자는 이것을 「정부가 한 도시의 범죄 전체를 감독할 동업자를 고르는 것」이라고 썼다. 멕시코 연방보안국(DFS)이 밀수 조직을 보호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인데, 이 기관은 부패 끝에 1985년 해체됐다. 프레시디오 맞은편 오히나가도 그런 길목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곳의 한 밀수 두목은 빅벤드를 끼고 약 300km의 국경 구간을 쥐고 있었고, 미국 마약단속국은 그 조직이 적어도 스무 건의 살인에 얽혔다고 봤다.
그 폭력은 미국 쪽으로도 넘어왔다. 1979년 샌안토니오에서 마약 밀수업자의 청부로 연방 판사가 살해된 사건이 그 예다(01장). 카터 대통령은 이것을 「우리 사법 체계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겹치면서 앵글로 텍사스 사람들의 말에서 「멕시칸」은 여러 사람을 한데 묶는 말이 됐다. 몇 대째 텍사스에 산 미국 시민도, 일하러 막 건너온 멕시코 국적자도, 국경의 밀수업자도 같은 말로 불렸다. 「웻백」이라는 멸칭은 합법 체류자에게까지 쓰였고, 1954년의 단속은 시민까지 실어 냈다. 1980년 앵글로 텍사스 사람들의 생각을 직접 보여 주는 여론조사는 찾지 못했다. 다만 위의 사실들 — 배심원, 학교, 묘지, 단속 — 이 그 시선이 어땠는지를 말해 준다.
멕시코계도 가만있지 않았다. 1960~70년대 민권 운동 속에서 멕시코계 미국인은 스스로를 치카노(Chicano)라 부르기 시작했다. 1970년 남텍사스 크리스털시티에서는 멕시코계 정당 라사 우니다(「하나 된 민족」)가 생겨 그해 지역 선거에서 시의회와 학교위원회를 차지했고, 1972년 주지사 선거에서 6%를 얻었다. 지도자 호세 앙헬 구티에레스가 1969년 「그링고(백인)를 죽이자」고 외쳤다가, 폭력이 아니라 백인이 쥔 제도를 선거와 경제로 이기자는 뜻이었다고 해명한 일도 있다. 같은 멕시코계인 하원의원 헨리 곤살레스는 「주먹을 쥐고 그링고를 죽이자고 해서는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당은 1978년 무렵 힘을 잃었다. 1980년은 그 운동이 지나간 직후다.

한국 독자에게 가까운 예는 재일 조선인이다. 일본에서 몇 대를 살아도 「조선인」으로 묶여 취업과 결혼에서 차별받았고, 법과 관습이 그 선을 지켰다. 텍사스의 멕시코계도 그 땅에 먼저 살았거나 몇 대째 살았는데 「멕시칸」으로 묶였다. 다른 점은 국경이 강 하나라는 것이다. 바로 건너편에 멕시코가 있고 사람과 물건과 돈이 매일 오가니, 이웃과 이주자와 밀수업자를 가르는 선이 앵글로의 눈에는 더 흐려졌다.
1836 · 1848
1836년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떨어져 나왔고,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끝나며 리오그란데가 국경이 됐다. 거기 살던 멕시코 사람들은 이사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 사람이 됐다.

1902
텍사스가 투표 조건으로 인두세(1.5~1.75달러)를 매기기 시작했다. 가난한 노동자에게는 투표의 문턱이었다. 1964년 연방 선거에서, 1966년 주·지방 선거에서 사라졌다.
1910~20
혁명을 피해 많은 사람이 강을 건넜다. 같은 시기 국경 습격과 보복이 겹치며 텍사스 레인저와 자경단이 멕시코계를 재판 없이 죽였다. 희생자 추정은 300명에서 5,000명까지 벌어진다.
1918.01.28
프레시디오 카운티의 마을 포르베니르에서 레인저 B중대와 목장주들이 비무장 남자와 소년 15명을 처형했다. 중대는 해산됐지만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2018년 마파 서쪽 US 90 가에 역사 표지판이 섰다.
1924.05.28
국경을 지키는 연방 조직이 처음 생겼다. 초기 인원은 수백 명이었고 말을 탔다.
1942~64
미국 정부가 멕시코 노동자 약 200만 명을 농장 계약직으로 들여왔다. brazo(팔)에서 온 이름이다.
1954
5월, 대법원이 25년 동안 멕시코계 배심원이 한 명도 없던 텍사스 카운티의 재판을 차별로 판결했다. 6월, 정부가 「웻백 작전」으로 대규모 단속을 벌였다. 미국 시민까지 실려 나간 일이 있었다.
1970
1월 크리스털시티에서 멕시코계 정당 라사 우니다가 생겼다. 같은 해 법원이 코퍼스크리스티 학군의 멕시코계 학생 분리를 법적 분리로 판정했다.
1975
텍사스가 불법 체류 아이들의 교육에 주 예산을 끊었다. 1982년 대법원이 위헌으로 판결한다.
1980
남서부 국경에서 붙잡힌 밀입국이 69만 554건이었다. 1970년(20만 1,780건)의 세 배가 넘는다. 국경순찰대 요원은 남서부 전체에 1,975명이었다.
1986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사람을 처벌하고, 1982년 이전부터 산 사람에게 합법 체류를 주었다. 약 270만 명이 받았다. 국경순찰대도 크게 늘기 시작한다.
읽다 걸리는 낱말들. 위쪽 검색창에 넣어도 여기로 잡힌다.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을 합친 말. 경기가 나쁜데 물가는 오르는 상태다. 1970년대 두 번의 석유 파동 뒤 미국이 겪었다. 1980년 미국 물가는 13.5% 올랐다.
1973년 아랍 산유국의 석유 수출 금지로 원유값이 약 네 배(3달러 → 12달러 가까이),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다시 두 배 넘게(배럴당 39.5달러까지) 뛴 일. 미국 주유소에 줄이 늘어섰다.
1972년 닉슨 대통령 재선 진영이 민주당 사무실(워싱턴 워터게이트 건물)을 도청하려다 잡히고 그것을 덮으려 한 사건. 닉슨은 1974년 8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사임했다.
1979년 11월 4일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이 점거되어 52명이 444일 동안 억류된 사건. 1980년 4월 미군 구출 작전이 사막에서 실패했다.
끔찍한 일을 겪은 뒤 그 기억이 되살아나고 잠을 못 자고 늘 긴장하는 상태가 오래 이어지는 정신 질환. 미국정신의학회가 1980년 DSM-III 에 처음 올렸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인정을 요구했다.
베트남전 시기 미국은 청년을 징집했고 1969년부터는 생일 추첨으로 순서를 정했다. 대학생은 입대를 미룰 수 있어 가난한 집 아들이 더 많이 갔다.
1944년 만든 법. 2차 대전에서 돌아온 군인에게 대학 학비와 주택 융자 보증을 주었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더운 사막. 약 50만 km²로 한반도의 두 배가 넘는다. 멕시코 북부에서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까지 걸친다. 해발 480~1,800m의 고지 사막이라 겨울에 언다.
텍사스에서 페코스 강 서쪽 9개 카운티. 81,530km²로 남한의 5분의 4쯤이다. 텍사스에서 가장 산이 많고 메마른 땅이다.
길이 3,051km. 콜로라도에서 시작해 멕시코만으로 간다. 1848년부터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이다. 멕시코에서는 리오 브라보(사나운 강)라 부른다. 엘패소 아래 서부 텍사스 구간은 물이 끊기는 때가 잦다.
「큰 굽이」. 리오그란데가 남쪽으로 크게 휘어 들어간 텍사스 남서쪽 끝. 1944년 국립공원이 됐다.
서부 텍사스와 뉴멕시코에 걸친 미국의 대표적 유전 지대. 페름기(Permian)의 바다 밑 지층에서 석유가 난다. 중심 도시가 오데사와 미들랜드다.
미국 주(州) 아래의 행정 단위. 한국의 군(郡)에 가깝다. 텍사스에는 254개가 있다.
치와와 사막에서 가장 흔한 관목. 비가 오면 특유의 냄새를 낸다 — 미국 남서부 사람들이 「비 냄새」라고 부르는 것이 이 식물 냄새다.
치와와 사막에만 자라는 작은 용설란. 잎끝이 바늘처럼 뾰족해 사람과 짐승을 찌른다. 치와와 사막의 지표종이다.
가늘고 긴 가시 줄기가 다발로 솟은 관목. 비가 오면 며칠 만에 잎이 나고 붉은 꽃이 핀다.
「영양」이라고도 부르지만 아프리카 영양과 다른 북아메리카 고유종. 시속 88km 안팎으로 달린다.
멧돼지처럼 생겼지만 돼지와 다른 과의 짐승. 무리 지어 다니고 선인장과 관목을 먹는다.
스페인어로 말 타고 소를 모는 사람. vaca(소)에서 온 말이다. 멕시코에서 발달한 바케로의 기술과 낱말이 미국 카우보이의 뿌리다. 영어 buckaroo(카우보이)도 이 말에서 왔다.
품삯을 받고 말을 타며 가축을 돌보는 목장 일꾼. 총잡이 이미지는 싸구려 소설과 서부 영화가 키운 것이다.
스페인어 rodear(둘러싸다)에서 온 말. 원래 소를 몰아 모으는 일이었고, 지금은 말 타기·소 잡기 기술을 겨루는 대회다.
챙 넓고 크라운 높은 카우보이 모자의 별명. 실제로는 1갤런의 4분의 3쯤 담긴다. 1865년 스테트슨의 「평원의 보스」가 원형이다.
1865년 존 B. 스테트슨이 만든 모자 회사이자, 카우보이 모자를 흔히 부르는 이름.
굽이 높고 목이 길며 끈이 없는 승마용 부츠. 높은 굽은 발이 등자 속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고, 끈이 없어 낙마할 때 발이 빠진다.
말 안장 양쪽에 매달아 발을 거는 고리.
웨스턴 셔츠의 진주빛 똑딱단추. 옷이 걸리면 툭 떨어진다. 1946년 덴버의 록마운트가 퍼뜨렸다.
굽이 낮고 네모나며 앞코가 둥근 카우보이 부츠. 말에서 내려 송아지를 묶는 일(로핑)에서 나온 모양으로, 걸으며 일하기 좋다.
소가죽이 아닌 부츠 가죽 — 도마뱀·뱀·타조·악어 등. 귀할수록 비싸다. 1980년 댈러스 고급점에서 악어 가죽을 두른 부츠가 2,500달러였다.
1883년 샌안토니오에서 시작한 부츠 회사. 손으로 만드는 고급 부츠로 이름났다.
펠트 모자의 품질 표시. 원래 1X~10X였고 10X가 비버 털 100%였다. 지금은 회사마다 기준이 달라 광고 숫자에 가깝다.
로데오 우승자에게 주는 상 버클. 1920년대부터 메달 대신 주었다. 이겨야만 찰 수 있어 돈으로 살 수 없다.
가죽 끈을 장식 고리로 조이는 웨스턴 차림의 넥타이. 텍사스는 2007년 주의 공식 넥타이로 정했다.
1980년 6월 개봉한 영화. 휴스턴 근교 술집 「길리스」가 무대다. 웨스턴 옷과 컨트리 음악, 기계 황소를 전국 유행으로 만들었다.
스페인어권 출신이라는 뜻. 미국 인구조사에서는 인종과 따로 묻는 항목이라, 피부색과 상관없이 스스로 멕시코계·쿠바계 등이라 답한 사람이 든다.
스페인어로 「텍사스 사람」. 텍사스가 미국 땅이 되기 전부터 살던 멕시코계 주민과 그 후손을 가리킨다.
멕시코계 미국인이 1960년대 민권 운동 때부터 스스로를 부른 이름.
텍사스와 미국 남서부에서 영어를 쓰는 백인을 부르는 말. 히스패닉과 대비해 쓴다.
멕시코에서 미국인, 특히 영어 쓰는 백인을 부르는 말. 「그리스어(griego) 같은 말을 하는 사람」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늘 욕은 아니다.
멕시코 스페인어로 살갗이 희거나 머리가 노란 사람. 국적과 상관없이 쓰고, 다정하게 부를 때도 쓴다.
brazo(팔)에서 온 말로 「팔로 일하는 사람」. 1942~64년 미국이 멕시코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들여온 제도의 이름이다.
리오그란데를 헤엄쳐 건너 등이 젖은 사람이라는 뜻의 멸칭. 불법 입국한 멕시코인을 가리켰고, 합법 체류자에게까지 쓰였다. 1954년 미국 정부의 단속 이름(웻백 작전)에도 붙었다.
1954년 미국 대법원 판결. 25년 동안 멕시코계 배심원이 한 명도 없던 텍사스 카운티의 재판을 차별로 판단했다.
투표하려면 내야 했던 세금. 텍사스는 1902년부터 매겼고 1966년에 완전히 사라졌다.
스페인어로 「학살」. 1910년대 텍사스 국경에서 레인저와 자경단이 멕시코계를 재판 없이 죽인 일을 가리킨다. 희생자 추정은 300~5,000명.
프레시디오 카운티의 국경 마을. 1918년 1월 28일 레인저와 목장주들이 비무장 남자와 소년 15명을 처형했다.
「하나 된 민족」. 1970년 텍사스 크리스털시티에서 생긴 멕시코계 정당. 1978년 무렵 힘을 잃었다.
스페인어로 「광장」. 멕시코 밀수에서 국경 길목 도시 하나의 밀수를 한 조직이 맡아 관리하는 구역을 가리킨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쓰는 말. 한 문장 안에서도 두 말을 오간다.
리오그란데 위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도시를 잇는 다리. 한가운데가 국경이고 양쪽 끝에 각 나라의 검사소가 있다.
국경에서 물건을 검사하던 미국 재무부 기관. 2003년 이민 쪽과 합쳐져 세관국경보호청(CBP)이 됐다.
국경에서 사람을 검사하던 미국 법무부 기관. 국경순찰대가 여기 속했다. 2003년 해체됐다.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 국경순찰대와 이민 당국을 부르는 말. 스페인어 migración(이민)에서 왔다.
국경에서 수십 km 안쪽 큰 도로에 국경순찰대가 둔 검문소. 1976년 대법원 판결로 의심 없이도 차를 세울 수 있다. 서부 텍사스에서는 I-10의 시에라블랑카가 대표적이다.
카운티의 치안 책임자. 주민이 선거로 뽑는다(미국 전체의 95% 이상, 텍사스는 4년 임기). 순찰·수사만이 아니라 유치장 운영, 법원 경비, 영장 송달, 압류 집행까지 한다. 중세 잉글랜드의 shire-reeve(주의 관리)에서 온 말이다.
보안관이 임명하는 부하. 사람이 적은 카운티에서는 몇 명뿐인 경우가 흔했다.
1820년대 개척민 자경대에서 시작된 텍사스의 주 수사 조직. 1935년부터 주 공공안전부(DPS)에 속한다.
1924년 창설된 연방 조직. 1980년 요원 2,268명, 지금은 약 2만 명이다.
마약단속국. 1973년 7월 1일 여러 조직을 합쳐 만들었다. 출범 때 특수요원 1,470명.
주류·담배·화기국. 1980년 당시 재무부 소속으로 연방 총기법을 집행했다. 지금은 법무부 소속이다.
1791년 미국 헌법에 덧붙인 조항. 「인민이 무기를 보유하고 휴대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개인의 권리라고 대법원이 못 박은 것은 2008년이다.
1934년 법. 기관총·총신이 짧은 산탄총과 소총·소음기 등을 등록하고 200달러 세금을 내게 했다. 등록 없이 가지면 10년 이하 징역의 연방 범죄다.
총신을 톱으로 잘라 짧게 만든 산탄총. 숨기기 쉬워진다. 총신 18인치(약 46cm) 미만이나 전체 26인치(약 66cm) 미만이면 국가화기법 대상이라, 등록 없이 만들거나 가지면 중범죄다.
한 번에 작은 납알 여러 개를 쏘는 총. 새 사냥과 집 지키기에 흔히 쓴다.
총신 안의 나선 홈으로 탄알 한 발을 멀리 곧게 보내는 긴 총. 사슴 사냥에 쓴다.
권총탄을 연달아 쏘는 작은 자동화기. 미국 연방법에서 기관총으로 분류된다.
권총만 한 크기에 연발이 되는 총. 미국 법에서는 기관총이다.
1898년 독일 마우저가 만든 볼트액션 소총과 그 노리쇠. 튼튼해서 사냥 소총을 짜 맞추는 바탕으로 널리 썼다.
1925년 미국에서 나온 사냥용 소총탄. 사슴·영양 사냥에 널리 쓴다.
미국 피츠버그의 조준경 회사. 긴 통 모양의 고배율 조준경을 만들었다. 2차 대전 미 해병대 저격수가 썼다.
1911년 미군이 채택한 .45구경 자동권총과 그 민간판. 1985년까지 미군의 기본 권총이었다.
1897~1957년에 만든 펌프식 산탄총. 공이치기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
1963년 나온 반자동 산탄총. 레밍턴은 반자동을 「자동」이라고 불렀다.
굵은 산탄. 지름 약 8.4mm 납알 아홉 개 안팎이 한꺼번에 나간다. 숫자가 클수록 알이 작다.
1950년대 이스라엘이 만든 9mm 기관단총.
오스트리아의 9mm 권총. 1982년 오스트리아 군이 채택했고 미국에는 1986년 무렵 들어왔다. 1980년에는 없었다.
미국의 값싼 반자동 권총. 1985년 무렵 나왔다. 1980년에는 없었다.
탄알이 든 원통이 돌아가며 한 발씩 쏘는 권총.
총구에 다는 통. 총소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줄인다. 국가화기법 대상이다.
멕시코산 헤로인. 정제가 덜 되어 갈색을 띤다. 1975년 무렵 미국 헤로인의 약 90%가 멕시코산이었다.
1970년대 말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만들어진 밀매 조직. 1980년대에 콜롬비아 코카인을 미국으로 옮기며 커졌다.
원래는 기업들이 값과 생산량을 짜고 정하는 담합을 뜻하는 경제 용어. 지금은 중남미의 거대 마약 조직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불법 상품의 값에 붙는 웃돈. 압수·체포·폭력의 위험을 지는 대가다. 마약값이 원료값보다 100배 넘게 비싼 까닭으로 꼽힌다.
1970년대 후반부터 콜롬비아 메데인을 근거지로 한 코카인 밀매 연결망. 한 회사가 아니라 생산·운반·자금·폭력을 함께 쓰는 밀매업자들의 연합이었다.
범죄로 번 현금을 은행·회사·부동산을 거쳐 합법적인 돈처럼 보이게 바꾸는 일.
가축을 도살 전에 기절시키는 축산 공구. 공포탄이나 압축공기로 쇠막대를 순간적으로 밀어냈다가 다시 기기 안으로 거둬들인다(captive).
motor + hotel. 국도변에 방문이 주차장 쪽으로 바로 열리는 숙소. 로비를 지나지 않고 차에서 방으로 들어간다.
운전석 뒤에 덮개 없는 짐칸이 달린 트럭. 미국 시골의 기본 차다.
예이츠가 1926년에 쓰고 1928년 시집 『탑』(The Tower)에 실은 시. 그 첫 행이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 이 소설의 제목이다.
지금의 이스탄불, 동로마 제국의 수도. 예이츠의 시에서는 늙지 않는 예술과 정신의 세계를 상징한다.
접속사를 계속 이어 붙이는 것. 「그리고 … 그리고 … 그리고」. 킹 제임스 성경과 매카시의 문장에 자주 보인다.
사실은 기억이 아니라 문헌에서 확인해 적었다. 출처마다 숫자가 다르면 범위로 썼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빼거나 밝혔다.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받았고 전부 퍼블릭 도메인이거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다. 원본 파일명은 build/data/nocountry/manifest.py에 적어 두었다. 1970년대 텍사스 사진 다수는 미국 환경보호청의 기록 사업 「다큐메리카」(NARA), 모텔·장터 사진은 존 마골리스와 캐럴 하이스미스(미국 의회도서관)의 것이다. 공중전화 부스 사진은 Robert Toren(CC BY 4.0). 한글 지도 세 장과 볼트건 개념도는 직접 그렸다.
Cormac McCarthy, No Country for Old Men, Alfred A. Knopf, 2005. 한국어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8, 2025. 그 전에 임재서 옮김(사피엔스21, 2008)이 있었다.
한국어판의 줄 첫머리 점·이음선이 무엇을 옮긴 것인지는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다(09장). 1980년 한 해의 정확한 총기 보유 가정 비율, 1980년 텍사스 멕시코계만의 인구와 중위소득, 1980년 앵글로 텍사스 사람들의 멕시코계에 대한 여론조사는 찾지 못했다. 1980년의 타조·악어 부츠 각각의 값과 비버 펠트 모자 값은 당대 자료를 찾지 못해, 확인된 가게 한 곳의 값(악어를 두른 부츠·도마뱀 부츠·모자)만 적었다. 압축공기식 볼트건을 공기통과 함께 찍은 사진은 공개 라이선스로 찾지 못해 개념도로 대신했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 위해 만든 배경자료다. 스포일러를 넣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다 — 줄거리·결말·인물의 운명이 없고, 코엔 형제의 영화(2007)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세계를 설명하되, 소설이 그 세계로 무엇을 하는지는 쓰지 않았다.